게임 엔진이라는 단어는 게임 개발에 대해 전혀 몰라도, 게임 산업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들이라면 자주 듣게 되는 일종의 수식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언리얼 엔진3를 사용해 개발 중인 초대형 MMORPG 게임", "이 게임은 유니티 3D 엔진을 사용한 멋드러진 그래픽을 자랑합니다." 등과 같은 표현은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게임 소개에서 무슨 엔진을 썼다라는 사실은 게이머들에게도 그 게임의 특징을 얼핏 가늠할 수 있는 마케팅적인 요소로까지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2014년 3월, 미국에서 열린 전 세계인의 게임 축제 GDC에서 가장 화제를 몰고 온 것은 게임 엔진들간의 불꽃튀는 전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여러 엔진들의 발표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것은 '유니티 5의 발표'와 혜성같이 등장한 '모두의 언리얼 엔진4'라고 보여집니다.
과연 두 엔진들은 어떤 특징과 차이점들이 있는지 제가 직접 파헤쳐보기로 하겠습니다.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게임 업계의 대표적인 미녀 비서.
그녀와 함께 한 프로젝트들이 크게 성공하면서, 그녀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고, 이제는 그녀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거리를 낳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그녀로 인해 보여질 프로젝트 퀄리티에 대한 기대심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측에서 그녀를 섭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가이다.
하지만 모바일 지각 변동과 함께 순식간에 온라인 게임 시장이 초토화되면서, 도도하던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갑자기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2014년 3월 20일 그녀가 '모두를 위하겠다'고 변화를 선언했다.
유니티 (Unity)
게임 업계에서 내조의 여왕으로 불리는 비서.
모바일 지각 변동으로 게임 업계인들이 모두 패닉에 빠졌을 때, 갑자기 혜성같이 등장하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모바일 환경에 쉽게 안착하면서, 초창기에 윈드러너와 같은 프로젝트들이 성공을 거두자 그녀는 순식간에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게임 개발이 쉬워진 나머지, 모바일 환경의 생태계가 급격히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유명세를 타면서 이제는 내조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1. 사용자를 위한 에디터의 편의성
2000년도 중후반의 게임 엔진 산업은 콘솔 및 대규모 MMORPG 게임을 타겟으로 고가에 판매하는 이른바 빅딜(Big Deal) 전략이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게임 엔진 회사들은 직접 대형 게임을 만들면서 기술력을 뽐내는 동시에 여기에 사용된 복잡한 에디터를 보여주면서 큰손들에게 '나를 쓰라'고 부채질을 계속 가했습니다.
하지만 애플 앱스토어 열풍이 불면서 Mac OS의 중요성이 갑자기 크게 부각되고 10년 전의 컴퓨터 성능밖에 내지 못하는 아이폰에서 동작하는 게임 시장이, 일반 게임 시장만큼 커지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게 됩니다. 이 때 혜성같이 등장한 것은 유니티 엔진입니다.
맥 OS 전용 엔진으로부터 출발하여, 기존 엔진에 비해 말도 안되는 저렴한 라이선스 정책, 심플하면서 단순한 설계에 기반한 에디터, 개발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스크립팅 언어의 채택등으로 기존 엔진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던 유니티 엔진은 애플 앱스토어와 함께 글로벌 슈퍼스타로 등극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전세계 엔진 시장을 휩쓸어버립니다.
이러한 게임 엔진 시장의 변화에 자극받은 언리얼 엔진은 1년 동안 와신상담합니다. 그리고 이번 2014년 GDC에서 '모두의 언리얼 엔진'을 발표합니다.
이번 동영상의 중요한 포인트를 꼽으면, 그 동안 언리얼 엔진은 이러한 대형 행사에서 공개한 영상에서는 엔진 기술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지, 엔진을 만드는 도구에 대해서는 특별히 어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GDC2014 에서 공개한 영상은 유니티를 완전히 작심하고 겨냥한 듯, 동영상 1분 부터는 에디터에 관련된 기능을 집중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유니티 사용자였던 필자가 조금 놀란 부분은, 언리얼 엔진4를 써보니 용어가 조금 다른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구성 및 사용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중에 유니티 개발자가 있다면 아래의 표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2. 소규모 인디 개발자를 위한 라이선스 모델
"제품 수에 관계없이 165만 원으로 평생 쓰는 라이선스"로 일컬어지는 유니티 엔진의 판매 전략은 그야말로 게임 엔진 시장을 초토화시킨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유니티는 '게임 개발의 민주화'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자본이 없는 소규모 스튜디오,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됩니다.
반면 대형 게임에 주로 사용되었던 언리얼 엔진은 별도의 UDK라는 브랜드로 소규모 스튜디오,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어필하려 했으나, 사용성 및 가격 정책으로 유니티에게 한참 밀리게 됩니다.
이번의 언리얼 엔진4는 '월 19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진입장벽을 완전히 낮추어 인디, 중소에서 대형 개발사의 개발자까지 모두 아우른다는 슬로건에 맞는 ‘모두의 언리얼 엔진4’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유니티도 공개하지 않은 소스 코드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합니다. 대신 제품이 출시되면 수익의 5% 로열티를 받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언리얼 엔진의 향후 전략이 상품 판매가 아닌 플랫폼 비즈니스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여지며, 이로 인해 사용자들은 더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더욱 더 쉬워지는 게임 개발
게임 개발에는 전문 프로그래머 직군들이 선호하는 C++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여 기기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내는 방법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사양들이 좋아지고 소프트웨어 개발의 분위기가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보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C++언어보다 스크립트 언어들이 현업에서 더 많이 쓰이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유니티는 스크립트 기반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여, 사용자들이 가장 골치아퍼하는 메모리 관리와 같은 세부 진행에 관한 부담감을 덜어내는 한편 버튼만 클릭하면 바로 진행되는 멀티플랫폼 시스템을 지원하면서 게임 개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특히 1인 개발의 사례들이 발표되면서 아트나 기획 같은 비 프로그래밍 직군들이 C#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유니티 스크립팅이 쉽다고 한들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밍입니다. 단순히 주위에서 쉽다는 말을 듣고 유니티 엔진을 접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프로그래밍 도구를 접하고 급격히 멘붕에 빠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번에 발표한 '모두'의 언리얼 엔진은 블루프린트 스크립팅이라고 불리는, 아티스트들에 친숙한 선을 연결하는 방식의 VPL(Visual Programming Language의 약자, 시각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을 체택하여 텍스트 코딩 없이도 전체 게임을 완성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프로그래머 출신인 필자는 사실 이러한 시각적인 프로그래밍 도구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구가 주는 효과보다, 이러한 도구가 프로그래밍을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완성도가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프로그래밍 도구의 버그로 인해 향후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종종 봐 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언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블루프린트 스크립팅은 과연 언리얼 엔진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완성도 면에서 엄청난 품질을 선보입니다. 에디터의 퀄리티 뿐만 아니라 전문 프로그래밍 툴에서나 제공하는 실시간 디버깅 기능까지 제공하는 등 뭐라고 흠잡을 데 없습니다.
예전에는 프로그래머의 전유물이었던 게임 개발이 이제는 점차 아티스트나 기획 직군도 도전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유니티의 C# 프로그래밍과 언리얼의 시각적인 프로그래밍 도구 중 어떤 방식이 사용자들에게 어필할 것인지 앞으로 전개될 엔진 전쟁을 흥미롭게 지켜볼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모바일 개발의 편의성
유니티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분명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 있습니다.
아마도 국내 유니티 개발자들에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게임이 아니면 유니티를 과연 사용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결과는 부정적이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만큼 국내 게임 시장이 스마트폰에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인데, 이것은 비단 전 세계의 흐름입니다. 현재 스마트폰을 잡지 못하는 엔진은 낙오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니티의 최대 장점은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스마트폰에서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6년 전인 2008년도에 아이폰 버전을 최초로 공개하고 2010년도에는 안드로이드를 공식 발표합니다. 아이폰 3G에서부터 산전수전부터 쌓아온 노하우들이 안드로이드폰 초창기에도 반영되면서 한동안 모바일 3D 게임에서는 경쟁자 없는 독점적인 지위를 맘껏 누리게 됩니다. 아래와 같이 편리한 개발 기능이 큰 역할을 하였는데, 단순히 플랫폼을 선택하고 빌드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결과물이 만들어집니다.
이번의 언리얼 엔진4도 마찬가지로 예전과 다르게 빌드 기능이 매우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환경 세팅을 마무리하고 빌드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완성됩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지원하는 기기 종류가 한정되어 있어서 전체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원활히 돌아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5. 그래픽 성능과 엔진 전쟁의 향후 전망
지금까지 모바일 3D 게임 제작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던 유니티에게 모두의 언리얼 엔진4 출시는 참으로 고민이 되는 악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언리얼 엔진의 큰 강점인 화려한 3D 그래픽이 비록 최신이지만 스마트폰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는 점이 유니티에게는 향후 점점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여집니다.
이는 3D를 일찌감치 평정하고 2D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던 유니티가 양쪽 영역에서 각각 전투를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3.0을 발표한 코코스2d-x(Cocos2d-x)가 3.0 출시로 2D 그래픽의 전통적인 강자의 위치를 다지고 있는 상황도 이 전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6. 결론
지금까지 유니티 엔진과 언리얼 엔진 4에 대해 간단한 비교 분석해보았습니다.
각각 엔진에 대해 애착을 가지는 분이나, 현재 특정 엔진으로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 분께는 이번 내용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리얼 엔진 4가 혁신적인 기능과 정책으로 시장에 선보였지만, 그 동안 유니티가 모바일 전문 엔진으로서 쌓아온 노하우나 안정성, 그리고 게임 개발 오픈 마켓인 애셋 스토어(Asset Store)와 같은 커뮤니티의 힘이 크고, 현재 많은 개발사들이 유니티로 개발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 엔진 전쟁에서는 언리얼 엔진의 고군분투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스코드 공개로 인해 개발자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면 이러한 판세는 어느 한순간 갑자기 뒤집힐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독점적인 제품이 오랫동안 있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라이벌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좋은 제품들이 나오게 되면, 여기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게임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이 되겠지요.
2D 게임 엔진의 강자인 코코스2d-x도 3.0 정식 발표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게임 엔진 시장의 판세는 점점 더 흥미로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니티가 유니티 5 발표를 통해 향후 어떤 반격을 할지 기대해봅니다.